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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기가 매력적이 이유는 알고도 막을 수 없는 궁극의 오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 시킨 수련의 결정체이며 가장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필살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패배라는 그림자가 지배해 버리고 만다. 그만큼 신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필살기.

 

야구는 아다치 미츠루의 필살기. 아다치의 야구만화는 믿고 볼 수 밖에 없고, 아다치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야구를 펼쳐낸다. 누군가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연애물이라고 한다. 천만에! 그건 아다치의 만화를 이해하지 못한거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이해하지 못한거다. 아다치의 야구만화에서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마운드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누구보다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외로운 사투가 예상된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장 정적이면서도 가장 긴장감이 흐르는 야구의 분위기가 페이지를 넘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야구의 특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야구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퍼즐들을 맞추어 나간다. 야구를 소재로 한 연애드라마가 아니라 야구를 통해서 서로간의 감정의 조각들을 말없이 전달하고 묘사할 수 있는 이심전심의 매력을 극대화시켜 연출해낸 최고의 하이틴 스포츠 드라마다.

 

조금은 이색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그려낸 아이돌 에이스는 어찌 보면 필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고, 별도의 쇼트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던 아이돌 에이스라는 영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출발의 목적이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현역 아이돌이 남장을 하고 고시엔의 에이스로 결승까지 올라간다고? 프로로 데뷔하여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다고? 아니 근데 어떻게 야구부에 있는 소꿉친구는 남자임에도 여자주인공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닮을 수가 있는거지? 등등 설정을 따지고 들면 하나하나 현실이 부서질 수 밖에 없는 이 말도 안되는 단편은 꾸준히 에피소드를 늘려가며 부정기적으로 에피소드를 이어나가며 단행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아다치 특유의 야구 드라마의 강점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말없이 이어지는 이심전심의 묘미가 탁월하게 연출되며 감성의 조각들이 빛이 나기 시작한다. 공 하나하나마다 감정들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벤트성으로 기획하고 시작되었던 단편에서 본격적으로 하이틴 스포츠 드마마의 묘미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오직 아다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야구가 펼쳐지고 오직 아다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말없는 연애드라마가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한다.

 

출발지점이 달랐기 때문에 터치“H2”와 같은 절대적인 명작의 위치로 올라서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열심히 스퍼트를 올리고 과거의 명작들을 따라잡고 싶지만 아다치의 만화가 가진 강점은 조금씩 완성해가는 마라톤 완주 같은 느린 페이스에 있기 때문에

 

SHORT GAME(쇼트 게임)은 전형적인 아다치의 단편집이다. 스토리의 강약조절, 호흡의 장단조절, 말없이 전달되는 이심전심, 배경과 분위기 만으로 전달해주는 감정의 흐름, 복선과 암시 등 단편이라는 짧은 페이지 안에서 아다치의 장점 또는 강점들을 압축시켜 아다치 특유의 재미를 가득 실었다. 특히 야구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통해 야구를 좋아하는 아다치가 야구를 소재로 단편이라는 제한된 지면 위에서 단순한 구성과 빠른 사건 전개를 특유의 흐흡조절을 맞물려 돌아가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여기다 작가노트에 해당하는 이벤트적인 에세이단편 등을 수록하면서 1권의 단행본으로 마무리 되는 단편집 특유의 실험적인 구성까지 완성해냄으로써 작품의 외적인 즐거움까지 팬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다. 특유의 말장난과 위트넘치는 유머러스함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연출되고, 잔잔한 여운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엔딩을 통해 몇 번이고 잠시 동안의 여유로움마저 취할 수 있게 하였다.

 

단편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아다치의 마법은 야구라는 필살기가 함께하면서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담겨있는 빛 바랜 느낌의 단편들까지 끄집어내어 노스탤지어의 이미지까지 전해주었다. 매너리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잔잔하게 가슴으로 스며들 수 밖에 없는 여백의 맛이 살아 있다. 아다치이기 때문에라는 말이 너무나 전형적이고 무책임한 평가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반복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평가이기도 하다. 이미 쇼트 프로그램이나 모험소년 등 일련의 단편집을 통해 느꼈던 아다치의 단편의 맛에 익숙한 분들이라고 여전히 취할 수 밖에 없는 단편집, 그리고 새롭고 이색적인 에세이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더욱 추천할 수 밖에 없는 단행본이다.



PS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아이돌 에이스(아이돌 A)는 짧은 이미지 클립형태로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 적이 있었던 작품입니다. 단편연재와 함께 기획 된 이 애니메이션은 아다치 특유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살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죠.


개인적으로도 아다치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볍게 흐르는 음악과 함께 청춘시절의 햇살같은 따사로움이 함께 하는 그야말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한편의 이미지보드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