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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여자 없는 남자들

sungjin 2014. 8. 29. 23:00

 

 

더 이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다시피 평생에 단 세 작품 정도만 발표했다면 하루키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하루키의 작품들은 이제는 익숙해진 하루키식 변주곡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작품을 읽다 당황스러워 할 일도 없고, 예상치 못한 결말의 낯설음을 경험시켜주지도 않는다.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내게 있어서 하루키의 작품은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의미 없이 읽어나갈 뿐인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하루키니까…’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는 이유도 하루키라는 브랜드가 어느 새 자연스럽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의 작품에 익숙해진 것처럼 하루키의 작품이 발매되면 습관적으로 책을 구입하고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여전히 작품 속에 담겨진 것들은 늘 경험하던 하루키식 문장과 이야기들이지만 어느 틈엔가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게 된다. 소설을 통해서 무언가를 기대할 여유도,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탐사해나갈 실존의 영역도, 소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파악하고 싶은 생각도 가질 틈도 없이 삶의 틈새 시간을 활용하면서 독서를 완료하게 된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하루키의 작품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삶의 일부처럼 작용하기 시작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난 후 다시 한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철저하게 현실이라는 기반을 두고 환상이라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특유의 현실감이 결여된 비현실성이 작품 속에 삽입되어 독자들을 기묘한 세계로 안내한다. 언제나 그렇듯 섹스라는 키워드가 배치되기 시작하고, 현대인의 결핍된 심리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비현실성과 환상이 현대인의 모습으로 치환되고 공감을 하게 된다. 때로는 수수께끼를 던져 놓고 끝내버리는 결말을 보여주면서도 작품을 읽고 난 후 미결이라는 느낌보다는 도착했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마무리 짓는다. 지나칠 정도로 익숙한 하루키의 작품 스타일이 고스란히 배여있음에도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난 후 날 선 비판보다는 익숙한 하루키 스타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즐기게 된다.

 

어쩌면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로 묶여 있는 단편들을 통해 하루키의 다채로움을 재발견한 것은 아닐까? ‘사랑한는 잠자같은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정말 탁월하게 뒤집어 버린 작품이잖아!,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 나이트가 하루키 스타일로 이렇게 펼쳐질 수 있엇구나!라고 감탄하게 된다.(물론 작품은 기---결이 아니라 기---승으로 끝난다.) ‘기노가 들려준 미완성의 궁금증은 여전히 매력적이라니까!, ‘예스터데이는 웬지 깔끔하게 구성된 것 같아!,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결핍된 심리를 파고들면서 독자들을 끌어 들이는 점에 한해서는 역시 대단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독립기관이 의외로 괜찮은데! 이런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은 여전히 매력적일 수 밖에 없을 걸!이라고 외치며 다시 한번 하루키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이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변명거리도 생각해 본다. 하루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외적인 정보의 공유를 위한 재미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곳곳에 작가의 사적인 모습들을 담았고,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무기를 펼쳐내었다. 단편을 통해 보다 강력하게 독자들을 공략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하루키의 작품은 정말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떤 해석이나 가치 평가를 떠나서.. 어떠한 이유나 변명이 아니라

 

그냥 하루키니까…’(너무 무책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