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NOTE

무의미의 축제

sungjin 2014. 8. 3. 10:49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작품을 집필한다는 사실이 놀라움 따름이다.”
“아니야! 그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기에 앞서 밀란 쿤데라가 1929년생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최대한 외적인 정보를 배제하는 방향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밀란 쿤데라의 나이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의미의 축제”와 비슷한 곳에 두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많은 삶은 살아온 쿤데라가 제시한 삶의 방정식을 내가 풀기에는 버거운 것일까? 내가 쿤데라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면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인가? 모르겠다. 적어도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쿤데라가 이 작품을 통해 던져준 삶의 방정식에 대한 해법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짧은 삶의 파편들이 나열된다.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어가면 연속적 또는 단절된 이야기들에게서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짧게 짧게 마무리되는 에피소드의 곳곳에 쿤데라의 삶에 대한 자세가 어떤지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무의미”라는 제목을 통해 작가는 삶에 대한 무의미함을 인식시킨다. 농담, 가치 없음… 현재 행해지고 있는 행위와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마치 세상의 흐름을 가만히 관망하는 것이 가장 삶에 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영역인 것처럼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이나 행동, 대사를 통해서 느껴지는 감정은 웬지 담담하다. 스탈린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실존인물마저도 이 작품에서는 농담이 삶에 있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에피소드를 위한 도구로 등장한다. 의미 있는 삶의 만들기 위해 가치를 부여하기 보다는 무의미한 삶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연적인 만남, 우연적인 사건… 마치 처음부터 당연하다는 듯 진행되는 삶의 파편들은 공통된 속성을 고유하기 보다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형태로 진행되며 최소한의 교차점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진행 될 뿐이다.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무의미한 삶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고 삶의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쿤데라의 삶의 해법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80년을 넘게 살아온 쿤데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분명 누구보다 깊고 무거울 것 같은데 말이다.(물론 쿤데라는 가벼움을 추구하지만 독자들에게 있어 쿤데라의 작품이 가볍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가 독자들에게 무의미함의 가치를 증명시켜주더라도 현대인들이 무의미의 축제를 즐기면서 삶의 본질적 영역을 탐사해 나갈 수 있을까?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삶은 분명 쿤데라의 말대로 삶의 본질적인 영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80대를 경험하고 있는 쿤데라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세상 누구보다 삶의 본질의 영역 개척에 매달린 작가였기에 ‘무의미의 축제’가 설득력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