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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별 녀셕들(우루세이 야츠라) 신인작가의 미성숙함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가장 빛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림 실력은 물론이고, 스토리나 연출에 있어서 풋내기의 느낌이 날 수 밖에 없는 어설픔이 오히려 타카하시 루미코의 강점을 돋보이게 할 수 있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빛나는 원석이 될 수 있었다. 시끌별 녀셕들 이후 란마와 이누야샤, 경계의 린네로 이어지는 소년선데이에서 연재하였던 루미코의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이 작품은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앞선 곳에 있음은 물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그녀의 후속 작들에 대한 평가를 절하시켜 버릴 정도였다.

 

아니! 세월이 지날수록 타카하시 루미코의 그림은 다듬어지고 연출은 한결 간결하면서도 능숙해졌는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원숙해진 작가적 역량은 데뷔 때부터 꾸준하게 지적 받아오던 약점들(그림이라든가, 연출이라든가, 다시 그림이라든가…)을 보완해 가면서 작품의 완성도가 좋아지고 전체적인 안정감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시끌별 녀셕들만큼의 평가는 커녕 시끌별 녀셕들의 또 다른 자기복제와 변주곡으로 평가 받는 경우도 보일 정도로 시끌별 녀셕들에 대한 팬들의 지지와 만화인들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물론 이 작품이 일본의 만화사를 통틀어서 살펴보더라도 만화계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판도를 변화시켰을 정도로 절대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원작가 타카하시 루미코에게 있어서 또 다른 한계점이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였나 생각한다.(타카하시 루미코가 대단한 이유는 시끌별 녀셕들 같은 작품으로 소년만화에서 자신의 정점에 도달했음에도 메존일각이라는 또 하나의 걸작 러브코메디물을 탄생시키면서 청년지에서 러브코메디물의 가장 앞선 곳에서도 정점에 도달했으며 타카하시 루미코 극장으로 불리는 일련의 단편집을 통해서 일상의 소시민적 삶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주며 또 하나의 작품 세계의 지향점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어시리즈 같은 공포물에서도 천재작가의 명성을 확인시켜주었지만…)

 

 

 

 

시끌별 녀셕들은 이후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에 있어서 가장 돋보이는 난잡함이 만화에서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증명시켜준 작품이다. 그녀의 예측불허의 개그가 좌충우돌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수많은 캐릭터들간의 부딪힘 속에서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정신없는 개그들은 마치 혼란스러운 웃음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듯 하다. 곳곳에 퍼져 있는 인산인해의 혼란스러움과 웃음의 파편들, 그리고 타카하시 루미코의 탁월한 센스가 합쳐지면서 타카하시 루미코식 난잡함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재미의 힘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이 같은 아이디어의 풍부함을 마구잡이로 풀어놓는 타카하시 루미코의 개그연출은 의도치 않은 우연적인 상황까지 겹치면서 기대 이상의 예상치 못한 재미로 다가오게 된다.

 

일반적인 슬랩스틱 코메디, 언어적 특이성을 이용한 말장난은 물론이고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재능은 정신없이 펼쳐지는 인산인해 속에서 펼쳐지는 난잡함 속에서 절묘하게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신인이였기 때문에 그림은 미숙하지만 미숙함 그림은 더욱 정신없는 개그의 아수라장을 묘사할 수 있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현들은 여기저기서 불쑥 고개를 내밀 듯 순간적인 인상을 강렬하게 남길 수 있었다. 액션연출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산만한 연출들이 오히려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들며 독자들을 정신 없이 몰아붙인다.

 

만일 다듬어진 그림체로 완성된 지금 우루세이 야츠라를 연재했다면, 원숙미가 더해진 지금 우루세이 야츠라를 연출했다면? 아마 그 시절 이 작품이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원초적인 이미지는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타카하시 루미코의 번득이는 센스는 여전하겠지만 좌충우돌 벌어지는 난잡함이 함께하는 특유의 산만한 연출에서 파생되는 웃음의 코드가 산탄총처럼 독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저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가적 역량은 너무 높아졌고, 펜선도 다듬어지고 그림도 완성되었다. 연출도 한 층 더 능숙해지면서 더 이상 과거의 거칠고 난잡했던 신인만화가 타카하시 루미코를 재현할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국민적인 사랑을 누리는 천재작가 타카하시 루미코의 현재를 과거로 돌리기에는 세월이 너무 흘러버린 건지도 모른다.

 

분명 시끌별 녀셕들의 그림은 높은 평가를 주기 힘들지도 모른다. 연출도 그렇고 특히 액션 연출은 여타의 소년만화에 많은 비교를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시끌별 녀셕들은 최고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산만한 연출과 그림들, 캐릭터들의 홍수 속에서 마구잡이식으로 펼쳐놓은 개그의 파편들이 풍부한 아이디어와 넘치는 센스 속에서 버무려지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원작자 타카하시 루미코도 이제는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