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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네오럭스 누트3, 인터파크 비스킷, 아이리버 스토리, 페이지원 HD, 북큐브612, 페이지원


전자책이 종이책의 감성을 넘어설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전자책이 가진 휴대성과 편의성은 분명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집안에 책장이 차지하는 공간이 최소 3평이상이라고 가정할 때 전자책을 통한 공간의 확보는 굉장한 금전적 메리트로 작용하게 됩니다. 1년에 3평 이상의 땅이 차지하는 임대료를 아낄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전자책의 컨셉 중 하나인 내 손안의 도서관은 종이책이 아무리 훌륭해도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죠.

 

물론 오브제 또는 디스플레이적인 측면에서 종이책이 가진 장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집안에 책이 천권 이천권 수준으로 있을 때나 이 같은 종이책의 인테리어 효과가 빛을 발휘하는 것이지 소장 중인 책이 만권 단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애물단지나 다름없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보관하지니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고결국 독서량이 많은 헤비유저들에게 있어서 전자책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리집은 50평이상이기 때문에 공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라고 주장하지 않는 이상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책은 집안 곳곳을 점령하다 결국 사람마저 내보낼 기세로 공간을 잠식해 버릴 것입니다.

 

책이라는 것은 게임이나 동영상처럼 빠른 속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페이지에 장시간 눈을 고정하고 가끔씩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시간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느리게 작동하는 E-INK 패널이 장착 된 전자책 전용 단말기에서도 독서 환경이 충분히 갖추어 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E-INK 디스플레이는 일반적인 태블릿PC나 스마트폰처럼 LCD LED의 빛이 눈에 직접 자극을 주어 피로도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종이처럼 주변의 빛을 반사해서 화면을 인식시키는 반사형 디스플레이이기 때문에 종이책과 같은 느낌으로 오랜 시간 독서를 가능하게 합니다. 물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생활하는데 굳이 느린 반응 속도를 지닌 E-INK단말기를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문하신다면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서를 할 때 E-INK단말기만큼 편안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하고 싶네요.

 


안드로이드가 적용된 반사형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단말기들 - 좌측부터 크레마 터치, 크레마 샤인, 미라솔


그런데 초창기 독서에 집중 된 전자책 단말기들이 점차로 스마트폰에 사용 되는 OS인 안드로이드를 채용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안드로이드 OS의 적용은 분명 전자책 단말기의 활용도를 높이고 출판사별로 고립되어 있는 폐쇄적인 전자책 시장에서 독자들의 선택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었지만 안드로이드가 지닌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독서 이외의 기능이라면 태블릿PC에 현저하게 밀릴 수 밖에 없는 E-INK 단말기는 보다 저사양 부품으로 최소한의 가격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불리함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던 E-INK 단말기가 미디어 플레이어 또는 멀티 오피스의 용도를 지닌 안드로이드와 결합하면서 불안정해지게 되었습니다.

 

교보에서 미라솔 디스플레이를 적용하여 반응속도가 빠른 컬러 전자책을 런칭하였습니다만 망막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지 않는 반사형 디스플레이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격이나 품질, 가독성 등 여러가지 면에서 어중간한 입장을 지니게 되었고 이 것은 고스란히 단점으로 고객들에게 인식되어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안드로이드 OS는 기본적으로 E-INK가 적용 된 단말기와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하드웨어의 SPEC을 높여도(가격적인 불리함 때문에 하드웨어의 SPEC을 높이는 것은 어렵겠지만) E-INK의 특성이 안드로이드 OS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안드로이드를 채용한 크레마 터치가 수많은 버그는 물론이고 내 손안의 도서관을 구현할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크레마 뷰어 자체의 불안정함도 크지만 E-INK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무리하게 안드로이드에 끌려다니고 있는 탓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구입하고 읽는 이들에게 전자책 단말기는 단순히 책만 읽을 수 있으면 됩니다. 보다 편안 환경에서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말입니다. 인터넷을 즐기고, 각종 문서를 확인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편하기 때문에 굳이 크레마 터치를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2012 9월에 출시된 크레마 터치는 2010 4월에 출시된 페이지원보다도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내손안의 도서관을 구현할 수도 없습니다. 페이지원의 하드웨어 SPEC이 낮아 반응 속도가 느린 것만 제외한다면 관리적인 측면에서는 크레마 터치보다 훨씬 용이합니다. 크레마 터치가 독서환경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충실했을지 모르나 구입한 책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는 엉망입니다. 책을 한권 한권 보는 것이라면 종이책을 보는게 편합니다. 하지만 개인 소장 도서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전자책이 강점을 지니게 되겠죠. 그런데 크레마 터치는 천권, 만권의 책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이전 세대인 페이지원보다도 훨씬 떨어집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 책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가 크레마 터치를 추천할 수 없는 이유도 많은 책을 관리하는 부분에서 너무나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 올레이북에서 약 400, 교보문고에서 약 200, 인터파크에서 약 100, 알라딘과 예스이십사, 리브로 등이 공동 출자한 한국이퍼브계열에서 약 600권 정도를 구매하였습니다.(북큐브나, 리디, 누트 등 기타 업체에서 구매한 책은 다 합쳐도 100권이 안됩니다.) 크레마 터치는 한국이퍼브 계열만을 지원하기 때문에 약 600권 정도가 소장 된 내 손안의 도서관을 구현하고 싶었습니다만 전혀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전 세대의 E-INK단말기인 페이지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크레마는 가족에게 양도하였습니다.

 


한국이퍼브 진영에서 최근 출시한 "크레마 샤인"


최근 크레마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크레마 샤인이 출시되면서 다시 한번 기대감을 가지고 구매하였습니다만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본다면 크레마 터치와 비교했을 때 장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프론트 라이트 적용으로 밤에도 읽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야간 독서 시간이 짧고 소형 북라이트가 있기 때문에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고 프론트 라이트로 인해 패널에 필름이 추가되어 오히려 크레마 터치에 비해 화면이 어두워지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800X600 해상도에서 1024X758 해상도로 높이면서 미려한 글꼴과 작은 글씨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텍스트 문서를 보는 데에는 800X600이면 충분합니다. 한자와 같이 복잡한 문자나, 작은 글자를 보는데 고해상도 패널은 장점입니다만(불법으로 다운받은 만화책 볼 때에도 강력한 장점이겠습니다만) ePub 포맷의 컨텐츠에서 딱히 고해상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그 외에도 자잘한 버그가 너무 많아 크레마 샤인을 구입하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절대로 말리고 싶습니다. 특히 책을 만권씩 소장하고 싶은 분이라면 더더욱 구입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기기입니다. 추후 펌웨어 등으로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현재의 크레마 뷰어 수준으로는 아마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크레마에 국한 된 것은 아니지만 컨텐츠 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곤 해도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국내 전자책 시장의 극심한 파편화 역시 전자책 시장에 큰 걸림돌입니다. 본격적으로 서점마다 전자책을 런칭한 것이 2010년부터로 잡으면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아직도 전자책 시장은 걸음마 단계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소비자들의 요구가 너무 많고 기대치가 큰 것도 있습니다만 출판사나 서점의 대응이나 전략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과 성향이 다르고, 전자책에서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바가 다릅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 현재의 전자책 시장은 여전히 부족해 보이고 이번에 출시 된 크레마 샤인은 더더욱 부족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