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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이별의 왈츠

sungjin 2013. 3. 9. 12:17



삶이라는 것은 우연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연이라는 계산할 수 없는 변수와 모순적인 함수를 거치면서 결국 나오는 해답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의 영역을 탐구해가기 위한 함수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밀란 쿤데라는 삶이라는 것을 수학으로 가정할 때 함수의 역할은 소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별의 왈츠에서 일어난 한가지 삶의 우연은 루제나의 임신이다. 그리고 루제나의 삶의 결과는 죽음이 된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수많은 삶의 영역은 개인에게 있어서 저마다의 고유한 부분들이 있지만 예기치 않게 다른 이들과 공유하게 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작은 파장은 엄청난 결과를 야기시키게 된다. 이별의 왈츠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형태로 진행되지만 그것은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삶의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불완전한 완전범죄라는 모순된 단어로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쓰고 불완전한 완전범죄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납득할 수 없는 구조, 엉성한 구성, 정교함을 찾아볼 수 없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삶의 한 단면처럼 느껴진다.

 

사랑, , 죽음 등 이 작품에 배치되어 있는 쿤데라의 키워드는 작가 특유의 언어적 연금술을 통해서 독자들을 중독시켜 나간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정의함에 있어서 벼락이라는 단어로 해설하듯 전혀 연상작용이 되지 않는 형식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을 일상적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쿤데라식 언어의 마법은 작품의 줄거리나 서술 방식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큰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즐길 수도 있으며 작품 속 이야기와 등장인물과의 연관성을 통해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이별이라는 슬픔의 느낌과 왈츠라는 즐거움이 느낌이 만들어내는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제목은 물론이고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이동해가며 자유롭게 캐릭터의 색깔을 풀어나가는 작품의 구조와 상반된 이미지, 그리고 호수 위에 던져진 돌맹이로 인해 조용한 파문이 퍼져나가듯 사색적으로 독자의 가슴으로 퍼져나가는 쿤데라의 소설이 지닌 사색적인 문장의 즐거움이 조화를 이루면서 어느새 매료되게 된다.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은 풍부한 이미지들로 채워지게 된고 쿤데라가 들려주고 싶었던 삶의 함수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을 통해 완성된다. 사랑이라는 테마를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완성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이라는 단어가 지닌 마법이야말로 우연으로 연속된 삶에 있어서 비논리적, 작위적인 모든 것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쿤데라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소설을 통해 또 다른 삶의 영역을 찾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쿤데라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통해 찾고 싶었던 것을 사랑을 통해 완성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