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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사형장으로의 초대

sungjin 2013. 2. 17. 02:37


띠지에서 사형장으로의 초대를 가장 환상적인 소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일까? 내게 있어서 이 작품은 당황스러운 소설로 기억 될 것 같다.

 

주인공 친친나트C가 사형을 선고받으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무엇 때문에 사형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투명한 존재들 속에서 불투명함을 인식했다는 식으로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유추될 뿐이다. 감옥이라는 제한 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제한 된 등장 인물들로만 전개해 나가는 사건들이 약 3주간에 걸쳐 진행 되다 몇 개의 반전을 거치고 주인공의 사형으로 끝이 난다.

 

일반인들이 투명한데 주인공은 불투명해서 사형 받았다고? 그러면 투명함과 불투명은 무엇을 상징한 걸까? 정치, 이데올로기, 개성과 몰이해? 나보코프의 삶의 궤적을 통해 정치적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외적 정보를 제외하고 예술가로서의 자세를 통한 상징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부조리한 상황들이 왜 이렇게 계속되는 거지? 웃어야 하는 걸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하게 장난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죽음을 통한 해방과 본질적인 세계로 이동만으로 마지막 장면은 끝인 걸까? 아무튼 정확한 파악이 힘들다. 다 읽고 난 후 페이지를 첫 장으로 넘겨서 다시 한번 읽어 나간다. 왠지 조금씩 파악이 되는 것 같긴 한데 명쾌하게 설명을 못하겠다.

 

나보코프는 처음부터 퍼즐이 완성 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 작품에 대한 접근을 잘못하면서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마치 미로에 갇혀 있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소설의 메타포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20장에 걸쳐 벌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한데 생각이 복잡해진다. 절망이나 롤리타처럼 주석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나보코프의 다른 작품과 비교한다면 그나마 언어적 장벽에 의한 제한도 적은 편인데 왜 이렇게 당황스러울까?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다. 감옥 안에 비치되어 있는 책상과 의자, 침대는 마치 어설프게 만들어 무대 위에 올려진 소품 또는 녹화장에 임시로 설치 된 세트 같다. 그곳에 존재하는 태양도 본질적인 속성이 빠져버린 허위의 존재 같고, 시계의 바늘은 빠져 있다. 면회하러 온 어머니를 패러디라고 규정지으며 친친나트를 둘러싼 감옥의 인물들을 인위적으로 배치시킨 것 같다. 불투명한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친친나트만이 제대로 된 존재처럼 느껴진다.

 

당황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다. 지나칠 정도로 물음표를 남발하게 된다. 혹시 가장 환상적인 소설이라고 했던 이유는 이 때문이였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