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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사랑(우스운 사랑)

sungjin 2013. 2. 17. 02:32


지금 당신이 한 말들은 모두 지나치게 피상적이예요.

 

쿤데라의 이야기는 모호하다. 이야기가 모호하고 표현방식, 문장에서 선택되는 단어의 의미가 모호하다. 인물에 대한 묘사도 명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친절하게 때문에 끊임없이 사고할 수 밖에 없는 아니 사색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로 다가오게 된다. 장면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없고, 치밀하게 짜여진 듯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크로키를 보듯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이미지로 관념적인 단어들로 채워놓는 경우가 많다. 쿤데라가 만들어내는 모호함은 중첩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다성적인 의미들로 엮어진다. 허술하게 이어진 듯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 생략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되는 사색의 과정을 거치며 풍부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내게끔 한다.

 

사랑에 대한 연작단편집 사랑(우스운 사랑)에서 쿤데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 같은 쿤데라의 특징들로 인해서 조금은 막연하게 그려지게 된다. 거짓말, 농담, 웃음 등의 단어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결합하면서 작가가 만들어내는 모호함을 통해서 쿤데라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쿤데라가 묘사하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묶은 연작단편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형태가 어떻게 각각의 또 다른 키워드를 만나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특유의 생각의 강을 따라 독자들을 안내한다.

 

사랑에 수록 된 각각의 단편들은 모호해서 어렵기 보다는 웬지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사랑의 다양한 형태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즐거움이 있고, 쿤데라의 문장이 자아내는 사색적인 즐거움이 있다. 각각의 짧은 단편들이 주는 개별적인 재미가 있으며 각각의 단편들이 함께 묶여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어지면서 주는 재미가 있다.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어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커지고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가 하면, 세상의 상식을 벗어난 사랑의 관계를 낭만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쿤데라 특유의 에로티시즘이 결합되어 묘한 흥분감을 선사하는가 하면, 작가의 언어적 연금술에 매혹되어 이상한 사랑마저도 낭만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야기에 강약을 주기보다는 호흡을 조절하는 느낌으로 작가의 위트와 센스가 사소한 곳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별히 이야기의 굴곡이 크지 않고 역동적인 전개나 사건이 펼쳐지는 줄거리가 없음에도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가며 결말을 궁금하게 만든다. 단편이라는 짧은 호흡 내에서도 탁월하게 장단을 맞추어가며 독자들을 요리하는 느낌이다. 마치 기교파 투수가 정직한 직구만으로도 완급조절을 통해 타자들을 요리하듯 쿤데라는 각각의 단편들을 통해서 쿤데라의 직구를 던지면서 완급조절로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시켜준다.

 

쿤데라의 작품을 읽다 보면 비슷한 색깔을 미묘하게 틀어서 변주시킨 것 같다고 이야기 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질린다는 이야기보다는 계속해서 읽고 싶은 매력이 강하다고 이야기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쿤데라의 마법은 연작 단편집 사랑(우스운 사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