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NOTE

불멸 by 밀란 쿤데라

sungjin 2012. 10. 4. 21:15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밀란 쿤데라는 존재의 의미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사고를 통해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불멸’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느껴지는 감정들은 마치 서서히 연주되는 음악처럼 느리지만 깊숙하게 머리를 거치지 않고 가슴으로 조용히 자리잡게 된다. 사고의 풍부함을 강요하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논리적으로 흐르는 생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작가로부터 전해오는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조용히 먼 곳을 바라보듯 작품을 읽는 내내 작품의 세상을 바라보며 어느 사이엔가 모르게 쿤데라가 만들어내는 느낌표들로 머리 속이 가득 채워지게 된다.

소설에서 본질적인 건 오직 소설로만 말할 수 있기에, 어떤 형태로 개작하건 각색을 하건 비본질적인 것만 남지. 
달리 말해 이야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소설을 써야 한다네.


오직 쿤데라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문장, 쿤데라만이 전해 줄 수 있는 느낌들로 ‘불멸’의 이야기를 완성해 낸 듯하다. 세상에서 비슷한 것 조차 존재할 수 없는, 다른 매체로 옮기거나 새롭게 각색 되는 순간 그 본질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오직 단 하나의 ‘불멸’이 존재하는 듯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대립되는 두 가지 관념을 놓고 각각의 개별적 특성을 강조하며 완성해낸 생각의 단편들, 사랑에 대한 다양한 아포리즘, 그만의 독특한 단어 선택과 활용은 텍스트라는 형식이 지닌 가능성을 통해 영상이나 희곡 등 다른 미디어나 다른 인쇄매체를 통해서 흉내조차도 낼 수 없도록 서술해 나간다.

‘불멸’의 이야기는 구성에 있어서도 독특한 형태를 취하면서 ‘이것이 바로 쿤데라의 작품입니다!’라고 외치는 듯 하다. 작가 본인의 서술로 시작되어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는 액자식 구성과 함께 별개의 독립적인 또 하나의 이야기가 병치시킨 구조를 취하며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일반적인 액자식 구성을 허물어뜨리고 외부 서술자로 등장하는 작가와 작가에 의해 탄생 된 소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동시에 별개의 독립적으로 병치되어 있는 듯 진행되던 괴테의 이야기는 “불멸”을 획득하면서 두 이야기를 연결시켜 전체적으로 하나의 복합적인 작품이 되게 하였다.

쿤데라는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남게 되는 ‘불멸’이 아니라 세상에 유일한 존재로 영원히 남아 있기 위한(그리고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서) ‘불멸’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작품 속에서 쿤데라는 ‘불멸’은 차별적 요인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쿤데라는 이미 ‘불멸’을 획득하였다고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바로 이 작품 ‘불멸’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