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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경계의 린네

sungjin 2012. 7. 8. 18:51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이 가진 근본적인 매력이 작품의 완성도나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진행되는 에피소드 안에서도 빛나는 개그 감각이 살아 있고 긴 호흡이 필요한 스토리 전개에서도 긴장감을 살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Trend에 민감하고 편집부와의 마찰이 심한 소년지에서도 여성작가 특유의 감성이 돋보이는 연출을 적절히 삽입하면서 여타의 소년만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더라도 여전히 신뢰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이런 내용인데 어때?’라고 할 때 ‘너무 뻔한 것 같아 별로일 것 같은데.’라고 대답할지라도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인데?’라고 한번 더 이야기 한다면 ‘그래? 꼭 봐야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작품이 주는 재미의 힘은 최소한의 보증수표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경계의 린네’를 감상하면서 느낀 점을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가 하고 싶다.

역시 타카하시 루미코!

언제나 느껴왔던, 그리고 매번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재미의 힘이 살아 있었다. 물론 우르세이 야츠라(시끌별 녀셕들)나 란마1/2에서 보여주었던 왁자지껄한 정신없는 개그의 묘미는 다소 완화 된 것은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으나 한층 더 작가의 원숙미가 넘치는 정제 된 연출과 탁월한 센스는 여전히 루믹월드의 마지막 퍼즐의 조각으로 손색없는 모습이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타카하시 루미코의 예측 불허의 개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자칫 진지하고 무겁게 전개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둡고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한순간 긴장감을 날려버리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감각이 넘친다. 어떤 캐릭터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잊게 만들어 버린다. 가볍고 부담 없이 전개되는 에피소드 속에서 타카하시 루미코가 선사하는 개그 연출은 작가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웃음 속에서도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여성작가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 Boy meet Girl이라는 고전적인 공식 안에서 그녀는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메디의 진수를 통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주 사소한 감정의 조각까지 세밀하게 연출해 내며 웃음 속에서도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 독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게 하였다. 여성작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타카하시 루미코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확실한 사실은 경계의 린네에서 보여주던 로맨틱 코메디는 오해와 엇갈림 속에서 타카하시 루미코 특유의 개그 감각이 더해진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감성적 연출이 함께 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경계의 린네라는 작품을 추천한다면 작품의 내용이나 소재보다는 아마 작가 ’타카하시 루미코’를 언급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루미코식 클리셰로 뭉쳐있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계의 린네는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 세계에 딱 맞는 RUMIK WORLD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