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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첫번째 장편 소설 ‘출항’은 고전적인 테마(제인 오스틴의 색깔이 짙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있어 제인 오스틴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당연하겠지만…)들로 구성된 소설임에도 이야기의 결말과 과정에 있어서는 기존의 전형성을 따르지 않고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전개를 한 작품이다.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당시의 여성이 삶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목표를 제한하고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 있는 느낌들을 풀어내었다. 처음으로 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좋아한다라는 감정들을 깨달아가는 과정, 삼각관계 속에서 꼬여가는 인물들간의 오해와 엇갈림 등 기존의 작품들을 통해서 이미 보아오고 느껴왔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며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묘사와 이야기 전개로 잔잔하게 다가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후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속의 절대적인 문장을 따르지 않는다.(물론 이 작품은 동화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비교한다면) 레이첼과 테렌스의 행복한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기대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슬픔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는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의 요소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결국 다른 방향으로 펼쳐낸 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 살펴본다면 전체적인 인물 구성과 이야기는 고전적이고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작품 속 곳곳에서 이 같은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댈러웨이 부부와 앰브로우즈 부부와의 모습을 통해, 레이첼와 앨런, 이블린의 대비를 통해, 테렌스 휴잇과 세인트 존 허스트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곳곳에서 전통적인 가치관과의 대립되는 캐릭터들의 단면들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만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여성으로 독립적인 주체성과 활동을 외치는 이블린의 모습이 울프의 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문학적인 삶을 살아가는 앨런의 모습에서도 울프의 자전적인 모습을 보이며, 철저하게 통제되고 제한 된 공간에서 자신의 재능을 특화시킬 수 밖에 없었던 레이첼의 모습 속에서도 울프의 자전적 요소들이 담겨 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보다는 등장 인물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자전적 요소들을 삽입하고 조용히 보여주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울프는 자신이 첫번째 장편 소설을 통해 어느 정도 기존의 문학들과 타협점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작품의 모습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항”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기 때문에 과대평가 받는 작품이고 동시에 과소평가받는 작품이다. 그녀가 이후 추구한 문학적 모습들, 그리고 그녀의 작품세계가 후대에 미친 절대적인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은 부족한 작품으로, 또는 처녀작임에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모습들을 보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라는 네임밸류를 걷어내고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자이기 때문에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모습들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었고, 기존의 전통적인 구조를 일부 극복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소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임에도 타작품에 비해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이 울프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울프의 작품 중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것처럼, ‘출항’은 여성작가의 가능성이 보이는 나름 괜찮은 작품이나 이후 발표 된 울프의 걸작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