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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sungjin 2012. 4. 18. 13:21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삶의 단면들이 지나칠 정도로 삽입되어 있다. 탐미주의 유미주의를 지향하는 작가적 성향은 물론이고 당시의 시대적 양심에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모습,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생활들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쓴 동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환상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희망찬 모습이나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비극적이고 우울한 작품으로 만들어 낼 정도로 오스카 와일드는 극단적인 작품 성향을 보여주곤 하였다. 특히 그의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이러한 작가적 성향이 절정에 이를 정도로 충격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원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었고 도리언 그레이는 외적 아름다움을 얻는 대신 영혼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만다. 외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분리시켜 자신의 초상화에 옮겨 담았기 때문에 그의 이중적 생활은 굉장한 탄력을 받게 되었고 외면의 아름다움이 진행될수록 내면의 타락은 더욱 추악해지고 파멸로 치닫게 된다. 한 화가의 모든 예술적 혼을 쏟아 부어 그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타락해가고 추악해지는 도리언 그레이의 내면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는 매개체다. 초상화는 단순히 도리언 그레이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세월의 흐름에 따른 도리언 그레이의 늙음을 흡수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도리언 그레이의 추악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작가는 초상화만이 아니라 예술의 담긴 모든 것에 대해 등가교환의 법칙을 적용시킨다. 자신의 작품 속에 익살과 웃음을 집어넣은 예술가는 재미없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자신의 작품에 별다른 특징이 없는 예술가는 반대로 삶 속에서는 유니크함을 지닐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도 무언가를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희생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확대시켜 적용한다. 개인에서 벗어나 타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결혼을 하게 되면 이타성을 가지게 되며 자신의 개성은 죽어갈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서술되는 이중성은 이 같은 등가교환의 법칙을 통해 상반된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고귀한 영혼 타락해 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환상 소설이면서 동시에 작가 자신의 예술관을 담은 소설이며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사소설이다. 또한 극작가의 재능을 작품 속에서 마음껏 펼쳐낸 작품으로 감각적인 묘사와 대화의 묘미가 한 것 살아 있는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은 물론이고 그가 은연 중에 작품 속에 단편적으로 삽입된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방법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짧은 단편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구성을 보여주었지만 장편에서도 이야기의 밀도와 강약조절, 특히 서술의 흐름성을 매우 자연스럽게 만들어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곧바로 작품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게 만들었다. 마치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할까?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주제, 생각, 그리고 소재나 내용면에서도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터부시 될 수 밖에 없는 내용, 기이한 이야기, 환상적 이미지 등 작품의 좋고 나쁨을 떠나 분명 이 작품의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정말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매력적인 이유는 작품의 소재나 작품 속 예술관 이상으로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 감각적인 표현력을 통해 흥미로운 사상들이 쉽게 다가온다.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고 오스카 와일드의 생각에 어느 틈엔가 귀를 기울인다.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마지막까지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래서 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작품을 혼자만 알기에는 아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