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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는 언어라는 사회적으로 약속 된 기호가 언제든지 임의적으로 재배열되고 같은 약속이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형태를 조금씩 바꾸어 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언어라는 형식의 본질에 가장 깊이 접근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율리시스라는 형태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율리시스를 통해 아일랜드의 모든 것을 들려주고 제임스 조이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통해 문학이라는 형태의 정점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시험하였다.(이 같은 조이스의 언어적 연금술은 이후 “피네간의 경야”를 통해 한층 더 초월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무엇보다 율리시스는 이 같은 문학의 시대성이나 역사성, 영원성을 동시에 획득하면서도 문학의 학문적인 접근에서도 굉장히 심층적이고 쳬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 권의 책 안에서 수많은 텍스트의 연구결과를 도출해 내면서 하나의 거대한 학문의 장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이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여전히 많은 연구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 사람이 창조해낸 하나의 작품이 이렇게까지 무한한 문학적 연구의 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에 와서도 경이적이고 신비로울 따름이다. 만일 제임스 조이스가 20년을 더 살았다면? 제임스 조이스가 21세기에 등장하였다면? 등등 수많은 가정을 통해 상상할 때 그는 과연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라는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킬 정도다.

율리시스는 문학이라는 형태를 지니고 있는 하나의 소설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며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을 즐거움을 얻고 감동을 주는 것이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이스는 그 같은 소설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기본적인 이야기 안에 다양한 재미들을 숨겨 놓고 즐거움을 주었으며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방랑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 속에서 감동을 전해주었다. 조이스는 필력이나 문장력도 우수하지만 위트와 유머,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도 재주가 뛰어난 데다가 패러디나 순간의 아이디어를 통한 기지의 발현에서도 탁월한 센스를 보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작가가 따라 여러 가지 특징적인 서술기법이나 텍스트 연출을 통해 새롭고 신선함이 더해질 뿐이다. 하지만 율리시스가 오늘날까지 그토록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 아일랜드의 국민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유, 그리고 대중과의 만남을 뛰어넘어 사회의 지식인과 상위 계급 또는 기득권에 이르기까지 문학으로는 좀처럼 공략하기 힘든 계층까지 모두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문학이라는 기존의 제도권에 반항하는 소설임에도 기득권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렸으며 외설시비에 휘말리면서도 지식인들 특히 교양이 높다고 자부하는 상위계급계층까지 모조리 초토화시켜 버렸던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문학계에 반항하는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흔히 말하는 장르 소설, 또는 독자들의 타겟, 일정한 경향성, Trend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칙릿, 라이트 노벨, 무협, 판타지 등)로 대중들과 가까이 하며 기존의 전통적 경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시장에서 가치를 증명시켜 나간다. 하지만 율리시스만큼 기본의 제도권 또는 기득권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함락시켜 버린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천재가 만들어낸 소설은 기존의 문학계의 전통성에 반항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모든 곳에서 가치를 증명시켰고 전통적인 계층의 가장 높은 곳까지 정복한 소설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