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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율리시스 제3장 - 프로테우스

sungjin 2012. 3. 27. 12:58



율리시스라는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조금씩 조금씩 작품의 난이도를 높여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난해한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비교적 문턱을 낮추어 시작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씩 조금씩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야기하였다시피 처음에는 스티븐 데덜러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전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키며 약간이나마 익숙함을 선사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의식의 흐름을 자제하면서 작품의 프롤로그적인 위치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스티븐 데덜러스는 앞으로 펼쳐질 리오폴드 블룸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면서도 자신의 생각들을 조금씩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3장 프로테우스 장은 본격적으로 스티븐의 생각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 기법을 펼쳐내며 독자들을 혼란 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며 제1부를 미무리 지으며 본격적으로 펼쳐질 블룸의 오딧세이야를 위해 뒷날을 기약하며 무대에서 잠시 퇴장하게 된다.

외부의 자극이 신호가 될 수도 있지만 내부의 무의식적인 기억의 발현 역시 신호가 될 수 있다. 의식은 언제 어디서든 무작위적인 형태로 자동 발현된다. 또한 한번 발현 되기 시작한 의식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정지되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가 하면 중첩되어 복합적인 다층 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공간의 제한도 허물어 진다. 물리적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개인의 의식은 무한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의식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더라도 내면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그 확장성에 있어서 가장 자유로운 서술기법이다. 외적 경험의 묘사에 있어서도 객관성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주관성을 강조하며 일반적인 묘사의 한계를 넘어 상식을 초월한 표현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

이 장에서 스티븐은 산책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행동을 취하지만 해변에서 자극 되는 작은 인상만으로 압도적인 장광설을 시작하게 된다. 샌디마운트 해변이 그에게 경험 시켜 줄 수 있는 것은 공간의 시각적인 감각과 파도의 청각적인 감각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스티븐의 내면의 자아를 만나면서 무한한 형태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개인적 삶의 경험으로 치환되는가 하면 예술적 종교적, 사상적 철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외부 세계의 시간과 공간은 차단되어 어느 새 스티븐이라는 인물의 내면 속으로 무한한 탐험이 시작 된다. 길고 긴 부메랑처럼 한참 동안 스티븐의 의식을 압도적인 장광설로 밀어붙이다 어느 순간 다시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칫 흐름을 놓치게 되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튕겨 나올 수도 있지만 일단 끈을 놓지 않고 흐름을 따라가면 무한한 본격적인 율리시스의 서술 기법이 전해주는 경험에 취하게 된다.

이 장을 마지막으로 스티븐의 이야기는 일단락 된다. 오딧세이야의 아들로서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것은 이후 블름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되지만 적어도 스티븐은 조이스의 분신이자 이상적 영웅의 모습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2부의 주인공이자 율리시스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리오폴드 블룸을 위한 프리퀼적인 성격으로 훌륭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대략적으로 이런 것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의 모습을 통해 “영웅 스티븐”이라는 완결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즉 프로테우스의 장은 앞으로의 시작을 알리는 서장이지만 조이스가 초기에 구상하였던 영웅 스티븐의 종착점으로서 훌륭하게 마무리 될 수 있는 장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이 장에서 스티븐은 자신이 쓴 책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누군가가 계속해서 읽게 될 것이라는 바램을 담은 상상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율리시스는 그 같은 스티븐의 바램을 이루게 되었고 이는 곧 조이스의 바램을 이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