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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등대로 by 버지니아 울프

sungjin 2012. 3. 19. 19:49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외쳐온 작가다. 초기 단편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녀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었고 때문에 문학이라는 장르에 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조용하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특히 여성작가라는 입장에서 당시의 여성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생활할 수 있는 것들이 남성들에 비해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경험의 한계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소설의 형태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통해 완성해내었다. 그 시대의 여성 작가들이 남성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어 외적인 사건이나 경험이 아닌 내면의 무한한 세계 속으로 승화시키면서 문학사에서 그 위치를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등대로는 이 같은 의식의 흐름을 통해 외적 경험의 한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방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소설이 취해왔던 이야기의 흐름이나 플롯의 구성을 뛰어넘어 독특하고 경이로운 형식으로 소설을 완성해 내게 된다. 등대로가 취하고 있는 실험적인 형식은 물론이고 하나의 작품 속에서 그녀가 추구하는 문학적 예술의 종착역을 그려내고, 자신의 자전적 사소설을 완성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그녀의 평생의 테마를 녹여내면서 그녀의 문학적 세계관을 구현해 내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사건들, 굴곡 있게 요동치는 스토리 라인도 없는 등대로의 이야기는 내면의 의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한한 세계를 그려나간다. 외적 경험이나 사건들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의식은 공통 된 경험을 제각기 파편화시켜 어떤 이야기보다 다양하게 펼쳐진다. 보다 깊숙히 파고드는 내면의 의식의 영역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무한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별다른 특징 없는 건조한 이야기도 풍부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주 작은 경험이나 외적인 감각도 다양한 형태로 흘러가며 깊이 파고든다. 반면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덤덤하게 지나쳐 버린다. 2부를 통해 묘사되는 10년의 세월 동안 별장이 파괴되어 가고 주요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퇴장하는 과정, 특히 역사적인 사건들마저도 사소한 비중으로 언급만 하며 지나갈 정도로 작품에서 흔적을 미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짧지만 강렬하게 묘사해 나가는 10년의 세월의 흐름은 어둡고 우울하게 묘사되면서 모든 사건들을 묻어 버린다.

등대로의 이야기는 울프의 자전적인 사소설의 모습을 투영하면서도 여성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있다. 억압과 권위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순종적인 어머니의 추억, 그리고 어린 날의 안식처가 되었던 장소가 소설 속에 반영되어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따른 모순점을 그려내었다. 특히 남편에 순종적인 전형적 여성상을 그리면서도 인물들간의 갈등 한가운데에서 완충적 역할을 하는 램지 부인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작중에서 램지 부인은 죽은 이후에도 여전히 타인의 내면에 깊은 존재감을 남기고 존재의 의미를 새겨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릴리의 그림을 통해 마무리 되며 예술적 완성도로 이어지게 된다.

등대로의 무대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소설의 배경은 한정되어 있고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많지 않다.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역시 일상의 무미건조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어린 시절의 삶이기도 하고 남성에 비해 제한 된 공간에 머물고 한정 된 경험만을 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울프는 무한한 소설의 세계관을 완성해 내며 여성이자 작가로서의 한계는 극복하는 것은 물론 여성이였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을 섬세하고 깊게 펼쳐나갈 수 있다는 장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여성임에도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주었다. 등대로는 울프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모두 담긴 문학적 지향점에 위치하고 있는 작품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