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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박경리 ‘토지’

sungjin 2012. 2. 14. 15:33



박경리의 ‘토지’는 대한민국의 파노라마이며 한국인의 파노라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처져 해방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안에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 문화를 담았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근원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그려내었다.

5부작에 걸쳐 권당 400페이지 전후의 21권으로 구성 된(나남판 기준) 방대함은 단순히 길기만 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일제 시대 우리의 아픔을 인내의 시간처럼 디테일하게 풀어나갔다. 수많은 인물들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접점을 통해 시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서희와 길상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의 모습보다는 이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물처럼 엮어나갔다. 인연의 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복잡해지고 방대해지듯 토지의 이야기를 권수를 더해갈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엮이게 되고 이것은 동시에 그 시대의 모습까지 함께 엮일 수 있었다. 평사리에서 시작 된 최참판댁의 이야기는 만주를 거쳐 서울로 돌아와 일본을 오고 가며 그 무대를 넓혀간다. 3대를 걸쳐 이어진 자손들의 이야기는 이전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당연시 되어야 했던 전통적인 가치관, 봉건적인 제도와 부딪히면서 사회의 변화과정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간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생활을 겪어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급속한 전통사회의 해체 속에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진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하였다.

수백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토지의 주체는 시대를 함께 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시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대의 공간을 재현하고 모습들을 그려내는 이야기를 넘어 역사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혼을 담아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민족의 정신은 독립운동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누구보다 강하게 외칠 수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 대화를 통해 조용하지만 호소력 있게 외칠 수 있었다. 바램의 메시지를 담아 희망의 속성을 가진 “한”이라는 우리 고유의 정서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가 하면 전통의 가치와 함께 우리 풍속의 가치를 깨우쳐 주기도 하였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모습을 통해서 소설 속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작은 이야기 하나에서도 많은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우리들로 하여금 시대의 공기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토지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만큼이나 드라마틱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세대간의 갈등이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일제 치하의 대한민국 사람들의 이야기는 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파노라마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듯 소설 속의 수 많은 인문들 역시 단편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결국 인연의 끈을 이어가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엮어지며 ‘토지’가 완성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슴 깊이 파고드는 깊고 잔잔한 울림이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토지라는 소설이 일반적인 소설 같은 주요 인물들의 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요 인물들을 시작으로 가지처럼 뻗어나가며 복잡하게 엮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던 것은 토지만의 소설이 가진 독특한 장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작품이 보여주고 싶었던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었다. 동시에 토지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과거로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에 전해 질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