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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죽도 사무라이

sungjin 2009. 5. 16. 15:06

©MATSUMOTO Taiyo/EIFUKU Issei/SHOGAKUKAN/애니북스

죽도 사무라이를 감상하고 있으면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다. 컷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작가의 펜선이 만들어 내는 그림들 한 폭 한 폭 담아서 화첩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다. 이미 세련된 필치를 구사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마츠모토 타이요는 이 작품을 통해서 한 층 더 혁명적인 스타일리쉬함을 완성하였다.

먹을 찍어 붓으로 그려낸 동양화마저 훌쩍 뛰어넘을 듯한 미학이 느껴진다. 여백마저도 빽빽하게 채워 넣었던 낙서의 향연 대신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배경들이 압축되어 은유적인 이미지로 채워졌다. 특유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마츠모토 타이요식 동양화의 완성은 고도로 상징화 된 연출력을 그림에서 뽐내 듯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고풍스럽다는 느낌도 아닌 담백하다는 느낌도 아닌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의 집합과도 같은 동양적 화풍에 녹아 있는 마츠모토식 영상미학이 절정에 달해 있는 이 작품은 문학에서 표현할 수 있는 비유법과 상징법이 그림을 통해 연출되고 있는 듯하다.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공포스러움을 보여주는가 하면 순간 힘에 눌릴 정도로 압도적인 강함을 연출해 낸다. 함축적인 이미지를 비유화시켜 의미를 전달하는가 하면 초현실주의 같은 화풍의 극단적 연출을 통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지나치기 쉬운 곳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도록 시선을 잡아두는 연출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고도로 상징화되고 비유적으로 표현 된 연출에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잃어버린다거나 의미를 파악하지 못 한 채 흘려버릴 수도 있음에도 작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절대적 강함으로 상징되어 있는 죽도를 차고 다니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는 어느 새 흥미를 가지게 되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단순한 철학적 의미와 주제를 전달하는 데에도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위에 실어 놓았다. 에도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생활상 등 시대의 모습을 화첩의 느낌으로 담아내면서 피를 부르는 악귀인지 단순한 괴짜인지 모를 죽도를 차고 다니는 낭인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삽입하였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처음 보여주었던 작품 세계는 마치 혁명과도 같았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과 세련 된 필치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매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놀라운 작품 세계와 스타일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한층 더 놀라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고 몬스터가 그랬고 넘버 파이브가 그랬다. 죽도 사무라이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작가가 만화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연출은 어디까지일까? 아마 작가가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한은 여전히 진행형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