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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은 본질적으로 코믹만화입니다. 웃음이라는 요소를 통해 즐거움을 주는 맛으로 작품의 인기를 모으게 된 작품입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잔재미들이 탁월한 감각과 센스로 펼쳐지면서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 정도로 멋진 웃음이 있습니다. 패러디와 까메오는 물론 대사 하나하나에도 놀라울 정도로 센스가 넘쳐 흐릅니다. 절대로 스타일리쉬한 비쥬얼이 돋보이는 작품이 아님에도 스타일리쉬함이 돋보이죠.

동시에 은혼의 이야기 속에서는 잔잔한 여운과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사회적 주류에서 밀려난 소위 사회적으로 뒤쳐진 3류 인생의 삶과 애환이 녹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은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소외된 계층의 감성이 깔려있습니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은혼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하류 인생들의 모습이 웃음이라는 형태로 멋지게 연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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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deaki Sorachi/SHUEISHA/학산문화사

나한테는 말이지, 심장보다 중요한 기관이 있거든.
그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통에서 가랑이까지 직통으로 뻥 뚫고 내 안에 존재하지.
그게 있어서 난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똑바로 걸어갈 수 있어.

여기서... 멈춰서면... 그녀석이 부러질거야.


영혼이... 꺽어진단 말야.

나한테는 심장이 멎는 것보다 그게 훨씬 중요해.
이 녀석은 나이 먹어 허리가 꼬부라져도 꼿꼿하게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구.


주인공 긴토키는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난 사무라이입니다. 천인들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영웅으로 활약했으나 지금은 사라져가는 구시대의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목검으로 우주선도 두동강 낼 수 있는 전설의 백야차로 유명한 사무라이였지만 지금의 시대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되질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 계층이죠. 하지만 다시는 눈앞에서 쓰러져 가는 소중한 것들을 잃고 싶지 않다며 영혼을 곧게 세우고 다니는 긴토키의 모습은 언제나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바닥에서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혼을 세운 긴토키의 이야기는 멋진 사무라이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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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deaki Sorachi/SHUEISHA/학산문화사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 남아봤자, 사무라이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사무라이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는 신파치는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생활하다 긴토키의 해결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명예도 지위도 없는 사무라이의 빛을... 언제 꺼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빛나고 있는 구시대의 영혼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신파치 역시 사회의 주류로 올라설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설령 그가 삶의 목표로 하는 것이 사회의 흐름에 밀려버린 검과 사무라이지만 누구보다 확실하게 의지를 이어받으며 혼을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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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끌어안고 있는 거나 버리는 거나 괴롭기는 똑같단다.
그러니 어차피 괴로울 거라면, 난 그걸 지키느라 괴로운 쪽을 택하겠어.


영혼에 담아둔 곧은 검만은 버리지 마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며 살고 있는 오타에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 역시 사회에서 소외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고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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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다들 약하고 시시하고 한심한 녀석들인데,
위기가 닥치면 무사도라는 신념으로 자기를 추슬러 절대 꺾이지 않는 강인한 전사가 됩니다.
야토나 사무라이나 전부 다르지 않아요. 모두가 자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라면 저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나에게 지지 않는 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태생부터 비주류로 태어난 외계별에서 온 노동자 가구라 역시 긴토키의 영혼에 끌려 비주류의 길을 걸어가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가구라 역시 누구보다 곧은 신념을 가진 영혼을 세우고 다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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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여명을 이 눈으로 지켜볼 때까지는 죽을 수 없다.

타인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었던 가츠라는 테러리스트로 수배되어 은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양이지사의 빛과도 같은 그도 지금은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새 시대의 방해물로 취급받습니다. 하지만 큰 이상과 목표를 가슴에 품고 있는 가츠라 역시 누구보다 곧게 세운 빛나는 영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너는... 변하지 마라.

어찌보면 가츠라가 긴토키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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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deaki Sorachi/SHUEISHA/학산문화사

괴물이라도 상관없어. 난 지킬 것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아.
전부 부술 뿐이다.


짐승의 신음소리가 멎을 때까지.

세상을 부수고야 말겠다는 다카스기 신스케는 '수라'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긴토키와도, 가츠라와도 더이상 만날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신스케의 모습은 이미 크게 어긋나버린 곳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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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deaki Sorachi/SHUEISHA/학산문화사

꼭 끝끝내 당신의 길을 걸어가야 해. 꼭. 꼭이야.

권력의 말단에 붙어 새시대의 흐름에 편입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신센구미 역시 조금씩 흐름에 뒤쳐지는 사무라이입니다. 자신만의 룰과 뜻을 가지고 뭉쳐진 집단이지만 곧게 나아가는 그들 역시 위로는 올라설 수 없는 계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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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deaki Sorachi/SHUEISHA/학산문화사

...어머니. 전... 지금... 꼿꼿하게 서 있습니까?

입국관리국의 하세가와 다이조는 막부의 중진이였으나 순간의 타락을 참지 못하고 꼿꼿하게 영혼을 세우다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캐릭터입니다. 성공을 위해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완폐아로 전락하고 만 하류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입니다.

이처럼 은혼의 메인 캐릭터들은 저마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버리고 맙니다. 상류에 위치할 수 없는... 상류에 가고 싶어도 흐름에 밀려 하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상류로 올라가면서 영혼을 타락시키기 보다는 하류에서 변치 않고 빛나는 영혼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혼의 등장 인물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겠죠.

은혼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뿐만이 아니라 작품 자체도 연재잡지인 점프에서 상당히 비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점프의 노선을 표방하기 위한 컨셉과 요소는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반(反) 점프 정신이 돋보일 정도로 비틀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이 있고 진지함이 살아있는 은혼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사회적 주류에서 벗어난 하류 인생들의 근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8.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