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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도로로

sungjin 2007. 12. 12. 23:55

©Tezuka Productions/학산문화사


도로로는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들 중에서도 상당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직접 이야기 한 것처럼 당시 요괴물로 인기를 누리던 미즈키 시게루(지금 다시 봐도 게게게의 키타로와 하동 삼페이는 명작!)에 대한 라이벌(?) 의식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요괴물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괴기하고 호러틱한 분위기는 테즈카 특유의 밝고 활발한 소년만화다움에 그늘을 만들어 버렸다.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로 인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과응보라는 고전적인 주제는 진지하고 무게 있게 연출되며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서 연재가 급하게 종결되는 불운을 겪음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사실 불운은 아니다. 이 작품의 한계는 분명했다.) 결국 정글대제와 아톰으로 대표되던 초기 테즈카 만화가 가지던 색깔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이후 블랙잭처럼 아웃사이더적인 캐릭터의 재미가 더해지지도 않은 채 결국 어중간한 위치에서 테즈카의 대표작에서는 한발짝 물러서게 된다.(테즈카 오사무는 모험활극, SF, 성인극화 등 다양한 장르는 물론이고 공포물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였다. 단편의 명수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스스로 ‘시대물에 약하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양지의 나무’같은 걸작을 발표하였지만 요괴물에서는 미즈키 시게루의 인상이 너무 강한 탓일까?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결국 이같은 요인들에 작품 자체의 인기를 저하시키게 되고 도로로는 스토리의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완결되고 만다. 물론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 중에서 미완 또는 연재 중단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도로로가 처음 연재할 때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도로로가 이런식으로 급하게 매듭을 짓게된 점은 분명 작가에게 있어 아쉬움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많은 아쉬움을 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4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끊임없이 재생산 되며 새로운 세대들에게 도로로의 재미를 전해주었다.(국내에서도 게임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실사 영화로 개봉되어 일본 박스오피스 4주 연속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당시 작가는 요괴물이 가지는 괴기스러운 맛이나 작품의 설정에 따른 잔인함, 지나치게 깊게 파고 든 착취당하는 계급의 부조리를 담아내는 무거운 내용으로 소년지다운 작품에 ‘어둠’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하지만 소년만화다운 테즈카 특유의 재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누더기 표주박의 철학, 테즈카의 스타 시스템을 통한 반가운 캐릭터들의 등장, 각종 까메오와 직설적 비유 등 작품의 외적으로 즐길 수 있는 테즈카 만화의 재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년지 특유의 모험활극의 재미, 인과 응보와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웅스러운 모습을 통한 대리 만족 등 소년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만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심지어 테즈카가 작품의 마이너스적으로 언급한 ‘도로로에 담겨 있는 어둠’마저도 소년지를 통해 연재하면서 새로운 맛을 주고 있었다.

도로로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여전히 테즈카의 소년만화에 위치시킬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작품의 내용과 주제, 설정 등은 다소 벗어난 듯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년만화가 가지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새롭게 재탄생되고 세대를 넘어서도 독자들의 곁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시대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재미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