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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즈 카즈오는 훗날 어떤 작가로 기억되게 될까?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공포만화의 대가?
재주가 많았던 방송인?
아니 거장이다. 호러물의 대가를 넘어 수많은 만화가들에게 존경 받는 만화계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가는 걸작들을 탄생시키며 만화계에 획을 그은 작품들을 발표한 일본현대만화사에서 빠져서는 안될 작가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들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작가적 평가를 할 때만큼은 최고로 평가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 구성, 작화나 연출 등에서 완벽하지 않은(오히려 비판 받는 경우가 많고 스토리 전개상의 옥의 티가 보이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약점마저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장점을 극대화시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대중성(실제로 그의 작품들이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를 통해 연출되고 있음에도)을 지니고 있다. 놀랍게도 소년지와 청년지, 그리고 소녀만화잡지와 여성만화잡지 등 남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을 타겟으로 하는 잡지에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그다지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연재잡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작가이기도 하다.
소학관의 ‘빅코믹 스피리츠’ 1982년 8호부터 1986년 27호까지 연재되었던 ‘나는 신고’는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외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대표작이다. ’“나는 신고”에서 우메즈 카즈오가 보여준 그로테스크함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며, 묵시록적 메세지를 담아 묵직하게 다가오는 무게감으로 독자들을 압도하였다. 특히 존재의 탄생과 가치에 대한 접근방식을 우메즈 카즈오 특유의 괴기스러움을 통해 탁월하게 연출해 내었다.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해서 무한히 뻗어나간 상상력도 놀라웠지만 상상력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 또한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공포만화가 우메즈 카즈오’라고 생각했던 독자들에게 작가의 존재를, 그리고 작품의 가치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조금 더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세계를 더듬어 볼 때 우메즈 카즈오의 대표작은 ‘표류교실’이 아니였을까? 1972년 주간소년선데이 23호부터 연재를 시작해 1974년 27호에서 마무리 된 이 작품은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세계의 중간에 위치하여 초기의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세계와 청년지 위주로 활동하던 후기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 세계의 모습들을 모두 포함하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 특히 우메즈 카즈오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우메즈 카즈오다운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일본 만화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우메즈 카즈오는 필수 과목이나 다름 없다. 그의 작품의 가치는 물론이고 타카하시 루미코나 이토 준지 등 그가 이후 수많은 만화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일본만화를 감상하면서 필연적으로 거쳐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을 거치게 된다면 ‘표류교실’이 필수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 일본만화를 접하는 사람치고 ‘표류교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표류교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862+1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야만 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는 처절함을 넘어 무서움, 추악함으로 극대화되며 전율을 일으키게 된다. 초등학생들로만 구성 된 작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은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면서 인간의 무서움이 얼마나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극단적인 형태로 전개되긴 하지만 우메즈 카즈오는 극단적인 전개를 더욱 극한의 형태로 연출하면서 숨쉴 틈도 없는 긴장감을 작품 속에 채워 넣고 있다.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이야기의 재미를 지속시켜나가고, 공포스러움을 전해주고 있다. 소년선데이의 연재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이후 청년지에서 활동하게 될 우메즈 카즈오의 작품세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표류교실’의 이야기는 클리세로 구성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출에 있어서는 우메즈 카즈오 자신의 작품에 대한 클리세이며,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서는 과거 다른 작품들을 통해 보여진 클리세들이다. 고립된 세계 속에 남겨진 어린 소년과 소녀들, 그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극한의 사투,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들의 추악한 본성을 그려나간다. 극단적으로 우울하고 암울한 이야기 속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공포만화가로서 활동한 자신의 특기를 살린 섬뜩한 연출과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떨림은 표류교실의 이야기 속에서 극대화되고 폭발시킨 최고의 분위기를 메이킹한다.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 언제나 보아오던 연출이지만 각각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이제껏 보지 못한, 그리고 느껴보지 못한 작품을 완성해 내었다.
‘표류교실’은 완벽하지 못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사건 전개와 구성, 그리고 작가의 작화와 연출에 있어서 분명 부족한 점이 보이는 작품이다. 초등학생으로 구성 된 인물들의 행동방식이나 개연성 없는 전개, 불필요한 구성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작가의 작화스타일이나 연출 방식 또한 조금 더 발전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밝고 활기찬 느낌으로 행복하게 미소 짓는 표정마저도 무서울 정도니…) 하지만 사소한 결점을 모두 덮어버릴 정도로 ‘표류교실’은 우메즈 카즈오의 연출이 빛나는 작품이며 분위기 메이킹이 압도적이다.
‘표류교실’은 분명 약점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표류교실은 훌륭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는, 그리고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면 막연한 수식어만을 나열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믿고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후회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PS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과 타니구치 고로 감독, 쿠로다 요스케 각본의 TV 애니메이션 ‘무한의 리바이어스’를 감상한다면 자연스럽게 ‘표류교실’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파리대왕이나 무한의 리바이어스 모두 철저하게 폐쇄된 세계 속에서 소년(또는 소녀)들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처절한, 그리고 추악한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형태와 권력의 붕괴와 이동과정, 그리고 각각의 사회가 만들어내고 풍자하는 모습들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자극하며 섬뜩할 정도로 무섭게 그려지고 있죠. 파리대왕이 비행기추락사고로 무인도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인간 사회의 축소시킨 파리대왕이나 암흑의 우주공간을 표류하게 된 487명의 소년소녀들이 펼쳐나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집합체, 권력의 형태를 모사한 무한의 리바이어스… 두 작품 모두 어린 시절 읽었던 15소년 표류기의 밝고 활기찬 이미지와는 달리 처절하고 비참한 극한의 드라마 전개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으로 목숨을 건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표류교실’에서 보여준 ‘섬뜩함’은 이런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말그대로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느낌입니다. 어느 작품이 훌륭하다거나 재미있다라기 보다는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닌 장르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표류교실’의 이야기는 분명 색다르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만화라는 매체는 각각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출이나 접근 방법에서, 특히 초기 기획단계에서부터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파리대왕이나 무한의 리바이어스, 표류교실은 각각의 매체에서 자신들의 장점을 살인 ‘폐쇄된 사회의 생존 드라마’의 묘미가 살아 있는 걸작입니다. 세 작품 모두 그 위치는 다르지만 공통 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만일 기회가 된다면 세 작품을 함께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볼 때마다 새롭고 독특하게 다가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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