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초현실적 부조리의 예술 – 나사식 by 츠게 요시하루(쓰게 요시하루)

sungjin 2012. 4. 21. 16:52

 

 

일본의 만화계 뿐만이 아니라 세계 만화계를 통틀어서 살펴보더라도 ‘츠게 요시하루’의 ‘나사식’만큼이나 큰 반향을 몰고 온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츠게 요시하루가 나사식에서 보여준 것들은 기존의 만화라는 형식에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한계로 규정하고 보다 확대 된 의미에서 접근해야만 했다. 또한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초현실적인 연출을 완성해 내면서 문학의 텍스트가 가진 장점과 미술이 가진 시각적 이미지가 가진 장점을 취하고 전혀 다른 독립적인 만화만의 장점을 통해 만화가 획득할 수 있는 예술성의 정점을 선점할 수 있었다. 특히 현재까지도 나사식에 근접하는 작품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츠게 요시하루가 나사식을 통해 보여준 것들은 초월성을 지니고 있으며 예술의 기본적인 본질 중 하나인 시대적 영원성을 지닐 수 있었다.

나사식의 이야기는 서사성이나 기승전결을 무시한다. 알 수 없는 대화와 말장난으로 이어진다. 어떠한 개연성이나 상관 관계 조차도 무시하고 철저하게 무의미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상처 입은 주인공은 의사를 찾는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지만 소용이 없고 기차를 타지만 제자리로 돌아온다. 늙은 상인을 만나지만 역시 대화의 생산성은 전혀 없다. 결국 산부인과 여의사를 만나 다친 팔에 나사를 박고 돌아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칸과 칸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 이어지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유기적으로 맞물려가는 내용이 아니라 곳곳에서 단절되고 끊어진다. 마치 꿈 속의 이야기처럼 특별한 법칙이나 수학공식을 무시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연결시켜 버린다. 일부에서 이 작품을 꿈속의 이야기라고 이야기하는 이유 역시 이 같은 점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치 무의식적인 꿈과 같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독자를 혼란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평론가, 나아가 예술가는 물론이고 심리학자들까지 혼란시켜 버린다. 그 결과 다양한 해석과 결론을 도출시켜며 작품에 대한 의미를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나사식은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보다 더욱 풍부해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무의미한 대사의 주고받음과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의식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숨겨진 텍스트를 끄집어 내는 이야기였다. 무의식적으로 확대 되어버린 나사처럼 반복되는 이야기,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나 조금씩 가라앉게 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사식은 만화가 가진 이미지적 상징물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메타포의 집합체의 작품으로 충실하게 표현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곳곳에 상식적인 이미지를 벗어난 그림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직유적인 연출을 상용해 지나칠 정도로 독자들에게 가깝게 접근하는가 하면 다양한 기호와 이미지들을 복합적으로 배치하고 나열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작품에 대한 순간의 이미지를 중첩시킨다. 군함이 보이는 여의사의 방, 전투기 아래에서 해변을 걷고 있는 소년,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 기차 등 물리적 현상을 초월한 모습들을 통해 꿈 같은 무의식적인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형상화 해내며 꿈 같은 무의식적 이야기를 하나의 완성 된 구조로 그려내었다.

나사식의 이야기는 지금도 다양한 해석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만화라는 형식이 가진 모든 장점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반(反)하는 것들로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단순히 만화라는 영역에 머물지 않고 예술이나 학계 등 보다 확대 된 영역에서 작품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는 이유, 그리고 만화라는 형식을 빌렸음에도 만화라는 껍데기만을 취한 채 전혀 다른 위치에서 탐구되고 독특한 위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나사식은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예술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형태로, 오직 만화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극한까지 도달시켜 버렸다.

‘나사식’의 이야기는 ‘나’라는 자아가 반복되는 순환 구조와 폐쇄성 속에서 온갖 부조리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물론 이 작품의 이 것이 정답은 아니며 다른 해석의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 그리고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함께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며 영원히 반복될 수 밖에 없는 폐쇄된 세계의 이야기이다.

기이하고 부조리한 비논리적 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가장 독특하고 몽환적인, 츠게 요시하루의 나사식은 만화의 장점을 가장 극대화시킨 반(反)만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