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TV시리즈에서 자신의 기반을 닦았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84년 나우시카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84년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86년 라퓨타, 88년 토토로, 89년 마녀의 택급편, 92년 붉은 돼지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5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야자키 최고 최대의 역작인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아니메이지에 틈틈히 연재하였고 오랜 선배이자 절친이기도 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을 프로듀싱하는 등 그야말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흥행신화의 초석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미야자키의 작품의 대한 신뢰를 쌓았고 지브리라는 브랜드를 완성시키게 된다. 물론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이 흥행과 작품성에서 보다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미야자키의 신화를 완성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이 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최고의 전성기였고 애니메이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재성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던 시기였다. 이른바 미야자키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캐릭터와 연출 등 작품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미야자키다움이 완성되었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붉은돼지는 이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해준 마지막 선물이다. 토토로를 기점으로 작품 세계에 큰 변화를 주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를 마지막으로 조금씩 자신의 작품세계가 지니고 있었던 장점들을 하나 둘씩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아시타카는 더 이상 날지 않았고, 센과 치히로는 미야자키 최대 흥행작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 보여주었던 미야자키의 모습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였다. 하울은 작품의 초반과 후반의 밸런스가 어울리지 않았고 표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성기가 이미 지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바람이 분다를 설마 미야자키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험활극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루팡3세나 명탐정 홈즈에서 보여준 액션의 생동감이나 박진감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였고 이 같은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여 미야자키는 나우시카와 라퓨타라는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토토로가 대단한 이유는 이 같은 모험활극의 요소가 배제되었음에도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을 작품 속에 새기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토토로는 이 같은 모험활극의 요소만이 아니라 캐릭터나 세계관에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게 된다.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이였던 나우시카나 파즈&시타와는 달리 현실의 불안정한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다. 사츠키와 메이는 물론이고 키키 역시 아직은 미완성의 어설픈 마녀였을 뿐이다. 이 같은 캐릭터의 불완전성은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 롯소가 마법을 걸어 돼지로 변하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캐릭터의 변화와 함께 작품 속 세계관도 변화를 보여주게 된다. 어딘가의 존재할 것 같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토토로는 일본의 어느 농촌이였고 키키는 유럽의 어느 마을 이였다. 이 같은 작품 속 무대는 붉은 돼지에서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로 보다 구체화된다.

 

위에서 붉은 돼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선물이라는 표현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성기 시절 시도하였던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면서 자신의 사()소설적인 모습들을 삽입하였고 미야자키다운 작품이면서도 웬지 미야자키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필모그래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초창기 시절부터 보여주었던 액션활극의 묘미를 극대화하였고 홈즈에서 보여준 동물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다시 한번 그려나갔다. 다국적 또는 무국적이 아닌 특정된 무대 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하늘 높이 날아 올랐고 날지 못하는 돼지는 돼지일뿐이라는 명대사를 날리면서 포르코 롯소는 시종일관 하늘을 날고 있었다.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버린 포르코 롯소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야자키가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아드리아해를 무대로 펼쳐진 붉은 돼지의 무대는 유쾌함이 가득하였다. 익살기 가득한 미야자키 초기 시절 보여주었던 웃음이였고 재기발랄함이였다. 누가 봐도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무엇보다 붉은 돼지는 평소 작품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겨 있기 때문에 소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사회에 실망해서 마법을 걸어버린 중년 남성의 속마음은 여전히 철없는 어린 아이와 같았고, 국가를 상대로 농담을 던지고 정치적인 색깔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를 무진장 좋아했던 소년 시절의 미야자키의 속마음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 작품에서, 그리고 이후 작품에서도 웬지 모를 훈계(사실 이 시절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웬지 모르게 교육적인 느낌이 있었다는 것이다.)마저도 여기서는 가볍게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냥 비행기를 좋아했던 소년이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비행기를 그리고 싶었고, 날고 싶었고, 어딘가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붉은 돼지 발표 이후 미야자키가 다음 작품을 개봉하는데 걸린 시간은 5년이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붉은 돼지 이후 미야자키는 이전처럼 치열하게 에너지를 창작활동에 쏟아내지 못하고 있었다.(이건 연령적인 문제도 있지만 기타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가장 치열하게 창작활동을 하던 시절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쏟아낸 작품이 바로 붉은 돼지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사()소설적인 느낌을 담아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 이후 미야자키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지만 이 시절만큼의 유쾌하면서도 개인적인 모습을 담긴 작품은 보기 힘들게 된다.

 

다시 한번 붉은 돼지를 감상하면서 느낀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작품 속의 모습들이 전해주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향수였고 동시에 미야자키와 함께 즐겨운 작품들에 대한 향수였다. 여전히 그의 작품을 보면서 즐거울 수 밖에 없는 가장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반짝임이 보이는 작품이였던 것이다. 위에서 계속 선물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도 이런 변하지 않는 반짝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