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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후미요의 작품은 우리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일본은 2대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우리들에게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가혹하고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저녁뜸의 거리를 읽을 때 불편함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입니다.
“저녁뜸의 거리”는 2차 대전 원폭피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에 대한 깊은 상처를 작은 목소리로 짙은 호소력을 보여주었지만 ‘대한민국’이 받은 뿌리 깊은 상처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흔히 이야기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비추어질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작품은 매우 훌륭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연출이나 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역시 높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끌지 못하였고 그나마 이 작품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 역시 위와 같은 부분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사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해외출판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슬픔”보다는 “일본인들의 만행”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는 이 작품을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코우노 후미요가 이후 발표한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작가도 이러한 점은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였습니다.
"폭력을 뒤따른 결과는 폭력에 굴복하게 된다는 이야긴가. 그것이 이 나라의 정체로구나"
이번에는 일본을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나카자와 켄이치의 ‘맨발의 겐’처럼 철저하게 일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였지만 저녁뜸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던 대한민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된 불쌍한 일본 국민들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가 다른 국가들에 대한 가해자였기 때문에 이런 슬픔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쟁이라는 비극이 만들어낸 슬픔을 일상 속에서 담담하게 녹여내면서 묵직하게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삶의 모습이 진솔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시대의 그림자가 배여나오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의 흐름만큼 성숙된 이야기와 함께 한층 더 실험적이면서도 훌륭해진 연출은 또 다른 작가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의 소중함을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여전히 불편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저녁뜸의 거리”가 발행되었을 때보다 긍정적인 목소리가 많아졌습니다.
특별히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이번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작지만 강하게 우리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PS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은 드라마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제작비가 모이지 않아 크라우딩 펀딩으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상업적인 히트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우리들에게 여전히 불편하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원작 만화에서 보여주었던 일본에 대한 불편함이 조금 희석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드라마는 솔직히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의 느낌이 있기 때문에 굳이 감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원작 만화를 감상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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