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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중력의 무지개

sungjin 2014. 11. 20. 18:45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작품.

감당할 수 없는 작품.

그럼에도

 

토마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를 결국 읽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결국 익사하고 만 것이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로켓 폭격을 맞은 느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1초당 340미터를 달리는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로켓에 크게 한방 얻어맞고 난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도 꼭 한발 늦게 깨닫고 앞장을 펼치게 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 되곤한다. 챕터 하나를 읽어나가는 것도 벅찬데-인터넷이 없었다면 작품 속에 등장한 수많은 미디어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을 불가능 했을 것이다. 물론 검색에 구속되어 작품 속 정보의 홍수에 익사한 것도 사실이다.- 페이지를 앞으로 돌린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작품의 줄기를 놓치게 되니 어쩔 수 없다. 핀천의 작품은 작품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큰 매력이 있으니

 

들려? 폴리스티렌의 진정한 고리가…...’

 

이런 문장들이 작품에서 수없이 표현되고 있으니 반할 수 밖에

 

중력의 무지개에서 핀천은 SF처럼 과학적 상상력으로 세계관을 창조하고 단단하게 구축하여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과학적 사실과 이론들이 문학적으로 치환되어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은 이 작품만이 아니라 핀천의 작품에서 특징되는 공통적인 부분이지만 중력의 무지개에서는 보다 넓고 깊게, 무겁고 높게 펼쳐지고 있다. 과학적 지식을 문학적으로 치환시키는 순간 펼쳐지는 무한한 소설의 가능성이 펼쳐진 것이다. 작품의 줄거리를 놓치게 되고 수많은 등장인물들,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고 있는 Side Story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없이 엮어지면서 한눈 팔기 힘들 정도로 이야기의 압박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정리되지 않은 작품의 흐름 속에서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이유도 핀천이 선사하는 과학의 문학적 치환 과정 또는 수학공식이 문학적 치환 과정에서 느껴지는 독서의 즐거움은 최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2의 법칙에서 무질서도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구! 엔트로피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맞아! 벤젠은 방향족이였지! 탄소의 가치가 높은 이유는 다리가 4개잖아! 확률의 상관성은 이래서 어려운거야!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구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구나! 포물선? 아니 원인가? 음속은 “340m/s” 이 정도는 기본이지. 등등 어설프게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들을 상기시키면서 중력의 무지개가 만들어내는 뜻밖의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중력의 무지개는 로켓의 포물선 궤적을 추적해가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의 폭력적인 변증법과 회위, 인간의 숙명과 자유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로 이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가면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을까? 적어도 나라는 개인으로 한정 지을 때 이 작품은 이 같은 주제보다는 앞서 언급한 과학적 묘사의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기묘한 능력을 지닌 프렌티스의 꿈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지만 주인공은 슬로스롭의 이상한 능력(로켓이 발사 될 때 감지 가능한)이 음모와 엮이면서 복잡해지고 카티에의 등장으로 극적인 재미가 더해진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만물상처럼 방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로켓-슬로스롭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이해부족은 곧바로 소화불량으로 이어지게 되고 읽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핀천식 서술방법에 매료되어 다시 한번 책장을 넘기고 핀천의 다른 작품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제발 누군가 내게 이 작품의 줄거리와 주제를 묻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49호 품목의 경매와 단편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그리고 비교적 편하게 읽었기 때문에 핀천의 작품을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중력의 무지개에서 꽤나 큰 펀치를 맞아버리고 만 것 같다.

 

그래도 좋다! 라고 이야기 한다면 오직 한가지, 과학적 요소를 문학적으로 치환가능한 핀천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즐거울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