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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루미코는 단편에서 언제나 가정의 모습을 담는다. 그녀의 주력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좌충우돌 정신없이 펼쳐지는 개그의 향연 대신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일상의 소소한 웃음 포인트를 찾아내고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들며, 삶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가정을 무대로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을 담아 따스한 감성으로 잔잔한 여운을 전해준다.

 

‘P의 비극’, ‘전무의 개’, ‘붉은 꽃다발로 이어지는 3권의 단편 모음집을 통해 전해주었던 감동은 다시 한번 운명의 새로 이어지게 된다. 한층 더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선과 보다 따스해진 감성,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웃음 속에 뼈있는 이야기들을 일상 속에 녹여 내었다.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울고 웃을 수 있는 페이소스를 담아 잔잔하고 깊은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너무나 당연시하고 자연스럽다보니 잊고 있었던 일상의 모습들이 포착된다. 밥먹으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줄 모르는 아이, 정성 담긴 아침밥을 시큰둥하게 먹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자신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제는 질릴법한 소재이지만 언제나 맞어!라고 소리치게 되는 고부간의 갈등은 어김없이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 속에서, 아주 보잘 것 없는 행동에서 전해오는 감정들은 어딘가의 환상이 아닌 현실 위에서 가슴 속 깊숙히 파고 들어오며 길고 긴 감동의 형태로 남게 된다. 때로는 만화적 상상력이 부여된 환상이 소재로 사용되긴 하지만 환상마저도 현실로 바꾸어버릴 정도로 타카하시 루미코는 철저하게 현실성을 부여하고 인간미 가득한 웃음을 연출하였다.

 

행복의 의미란? 지나치기 쉬운 곳에서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소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지나친 배려심보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신뢰보다는 의심이 양념처럼 곁들여진다면 조금 더 삶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에 대한 수많은 물음표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답은 없으며 오히려 해답을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많은 물음표들을 대면하게 된다. 타카하시 루미코 역시 단편들을 속에 조명된 삶 속에서 수많은 인생의 물음표를 던져주지만 정확한 해답을 던져주진 않는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바라볼 수 있게, 따스한 시선을 지닐 수 있는 감성을 가르쳐준다.

 

란마나, 이누야샤, 우루세이 야츠라처럼 황당한 개그와 풍부한 만화적 상상력으로 무장 된 그녀의 연재작들을 통해서 보여준 그녀의 강력한 재미의 힘이 없음에도 그녀의 단편들을 읽으면 마음이 풍부해진다.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여운을 음미하게 된다.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취해있고 싶을 정도다. 살인적인 주간 연재 중에서도 틈을 만들어 발표한 단편에 담은 작가의 애착만큼이나 독자들 역시 사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소중함이 느껴지는 작품, 평범하기 때문에 더욱 더 반짝임이 느껴지는 작품이다.